서비스기획 이야기

서비스기획자에 있어 경력과 경험, 노하우의 가치

BasicPlan 2025. 6. 2. 18:33

서비스기획자로서 10년차, 15년차, 20년차를 넘어가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나의 경력과 경험이 실제로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그리고 그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긴 시간 동안 다양한 프로젝트를 거치면서 쌓인 노하우는 단순한 시간의 축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었고, 그것이 바로 서비스기획자의 진짜 가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경력의 깊이와 넓이, 두 가지 차원

서비스기획 분야에서 경력을 쌓는다는 것은 두 가지 차원에서 진행됩니다. 하나는 깊이고, 다른 하나는 넓이입니다.

깊이는 특정 도메인이나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핀테크 분야에서 오랫동안 서비스기획을 해왔다면, 금융 서비스의 특성, 규제 환경, 사용자 행동 패턴 등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게 됩니다.

넓이는 다양한 프로젝트와 도메인을 경험하면서 얻게 되는 종합적인 시각입니다. 쇼핑몰, 콘텐츠 플랫폼, 교육 서비스, B2B 솔루션 등 서로 다른 성격의 프로젝트를 경험하면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과 사용자 니즈를 이해하게 됩니다.

한번 금융 앱 프로젝트를 담당한 기획자를 가정해봅시다. 초기에는 UI/UX 요소나 기능적 측면에 집중했을 테지만, 경험이 쌓일수록 금융 서비스의 본질적인 가치, 사용자의 재무적 의사결정 패턴, 보안과 신뢰 구축의 중요성 등 더 깊은 차원의 통찰을 얻게 될 것입니다.

반면 다양한 산업군의 프로젝트를 경험한 기획자는 각 도메인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접근법을 도입할 수 있는 시각을 갖게 됩니다. 예를 들어, 교육 서비스에서 효과적이었던 게이미피케이션 요소를 금융 앱에 적용하거나, B2B 솔루션의 데이터 시각화 방식을 콘텐츠 플랫폼에 응용하는 식입니다.


시간이 주는 패턴 인식 능력

경력이 쌓이면서 가장 크게 발전하는 능력 중 하나는 바로 패턴 인식입니다. 수십 개의 프로젝트를 거치면서 성공과 실패의 패턴을 보는 눈이 생깁니다.

금융 서비스 앱 프로젝트에서 사용자 온보딩 단계를 설계할 때의 상황을 떠올려 봅시다. 신규 사용자에게 너무 많은 개인정보를 한꺼번에 요구했던 접근법이 높은 이탈률로 이어졌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점진적인 정보 수집의 중요성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런 패턴 인식은 단순히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부정적 교훈에 그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왜 그런지'에 대한 본질적 이해입니다. 사용자가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심리적 장벽, 가치와 노력의 교환 관계, 신뢰 구축의 점진적 특성 등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죠.

한번 이커머스 플랫폼 개편 프로젝트를 가정해봅시다. 경험이 많은 서비스기획자라면 단순히 트렌디한 디자인이나 새로운 기능 추가에 집중하기보다, 사용자의 구매 여정에서 발생하는 마찰 지점을 먼저 식별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프로젝트를 통해 '작은 마찰의 제거'가 '화려한 새 기능'보다 전환율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패턴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패턴 인식은 시간과 경험의 축적 없이는 얻기 어려운 능력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경력 있는 서비스기획자의 핵심 가치 중 하나입니다.


위기 상황에서의 판단력과 해결 능력

어떤 프로젝트든 예상치 못한 위기와 도전에 직면하게 마련입니다. 경험이 풍부한 서비스기획자의 진가는 이런 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합니다.

한 B2B SaaS 프로젝트에서 출시 직전에 핵심 기능의 중대한 문제가 발견되었다고 가정해봅시다. 출시 일정은 이미 공지되었고, 마케팅 캠페인도 진행 중인 상황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경험이 부족한 기획자라면 패닉에 빠지거나 무조건 일정을 연기하자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베테랑 기획자는 다른 접근을 할 것입니다. 문제의 심각성을 정확히 평가하고, MVP(Minimum Viable Product) 관점에서 출시 필수 요소와 타협 가능한 요소를 구분하며, 창의적인 우회 방안을 모색할 것입니다.

일전에 모 스타트업의 모바일 앱 출시 프로젝트에서 비슷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핵심 기능의 백엔드 연동에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출시 2주 전에 밝혀졌습니다. 이때 취한 접근은 기능의 완전한 구현을 연기하는 대신, 사용자에게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라이트' 버전을 먼저 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베타 테스터로부터 피드백을 수집하여 최종 버전에 반영하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접근은 사용자의 참여도를 높이고, 최종 제품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의 이런 판단력은 다양한 상황을 경험하고, 그 결과를 지켜봤던 경력에서 나옵니다. 단순히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의미 있는 도전과 실험, 그리고 성찰을 거쳤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암묵지(暗默知)의 가치: 문서화되지 않는 노하우

서비스기획자의 경험과 노하우 중 상당 부분은 명시적으로 문서화되거나 전달되기 어려운 '암묵지'의 영역에 속합니다. 이는 마이클 폴라니가 말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개념과 일맥상통합니다.

이 암묵지는 프로젝트의 미묘한 뉘앙스를 포착하는 능력, 다양한 이해관계자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감각, 사용자의 표현되지 않은 니즈를 읽어내는 통찰력 등으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클라이언트와의 첫 미팅에서 그들이 명시적으로 요구하는 것과 실제로 원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감지하는 능력은 쉽게 전수되지 않습니다. 이는 수많은 프로젝트에서 다양한 클라이언트와 협업하면서 자연스럽게 발달하는 감각입니다.

기획 워크숍을 진행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논의가 특정 방향으로 흐를 때, 실질적인 가치보다 개인의 선호나 조직 정치에 의해 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는 능력은 경험에서 오는 암묵지입니다. 이런 상황을 적절히 제어하고 다시 가치 중심의 논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은 베테랑 기획자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한번 대기업의 내부 업무 시스템 개편 프로젝트를 가정해봅시다. 각 부서마다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최우선으로 반영해달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경험 많은 서비스기획자는 표면적인 요구사항 이면에 있는 실제 업무 흐름과 통합 지점을 식별하고, 전체 시스템의 일관성과 효율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각 부서의 핵심 니즈를 충족시키는 방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암묵지는 단순한 '노하우'나 '팁'의 차원을 넘어서는, 서비스기획자로서의 정체성과 직관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오랜 경험이 주는 가장 귀중한 자산일 것입니다.


지속적 학습과 성장의 중요성

물론 단순히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모든 경험이 가치 있는 노하우로 전환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치 있는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학습과 성찰의 자세가 필수적입니다.

한번 10년 경력의 두 서비스기획자를 비교해봅시다. 한 사람은 매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성공과 실패 요인을 분석하고, 새로운 방법론과 도구를 학습하며,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흡수하려 노력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익숙한 방식만 고수하며 새로운 도전을 회피했습니다. 같은 10년이라도 이 두 사람의 실질적인 역량과 가치는 크게 다를 것입니다.

디지털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서비스기획자에게 있어 '과거의 경험'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학습의 민첩성'입니다. 새로운 기술 트렌드, 사용자 행동 패턴의 변화, 산업 생태계의 진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일전에 한 금융 서비스 앱 프로젝트에서 경험했던 일입니다. 초기 기획 단계에서 젊은 주니어 기획자가 Z세대의 금융 습관과 소통 방식에 대한 통찰을 제시했습니다.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시니어 기획자들도 이 새로운 관점에 귀 기울이고, 자신들의 경험과 새로운 통찰을 융합하여 더 혁신적인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진정한 경력의 가치는 단순한 연차가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얼마나 깊이 있는 성찰과 지속적인 학습을 이어왔는가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세는 1년차 기획자에게도, 20년차 베테랑에게도 똑같이 중요한 덕목입니다.


경력과 경험, 노하우의 진정한 가치는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과거의 성공 사례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도전에 더 현명하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비스기획자로서의 경력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어쩌면 '자신감'과 '겸손함'의 균형일지도 모릅니다. 다양한 상황을 헤쳐나온 경험에서 오는 자신감, 그리고 항상 새로운 것이 등장하고 배울 것이 있다는 겸손함.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룰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경험 있는' 서비스기획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Jay Kim
웹/앱 서비스기획 26년차
현대경제연구원 IT분야 전문 컨설턴트
프로필 http://bit.ly/3E1OGQB
프로젝트 문의: mailside@gmail.com (카카오톡, 지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