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앱이나 웹 서비스를 기획할 때 놓치기 쉬운 본질이 있습니다. 단순히 예쁜 화면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개발 가능한 서비스를 설계하는 것이죠. 이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프로젝트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분기점이 됩니다. 한 대형 금융 서비스 리뉴얼 프로젝트에서 기획팀이 제출한 문서는 수백 페이지에 달했지만, 정작 개발자들은 그 문서를 보고 구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까요?
기획은 단순히 '화면을 그리는 작업'이 아닙니다. 디자이너가 아무리 뛰어난 피그마 실력을 가졌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기획의 역할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기획의 핵심 가치는 개발될 서비스의 청사진을 그리는 것에 있습니다. 이는 마치 건축가가 아름다운 조감도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건물이 세워질 수 있도록 구조와 재료, 시공 방법까지 고려하는 것과 같습니다.
기획의 진정한 역할
기획이 개발과 디자인 작업 전에 이루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개발자와 디자이너는 기획자의 작업물을 바탕으로 코딩과 디자인 작업을 진행합니다. 이 프로세스에서 기획은 단순한 시각적 결과물이 아닌, 개발 가능한 서비스의 설계도를 제공해야 합니다.
최근 한 프로젝트에서 기획팀은 기존 시스템에 대한 분석이 화면 캡처 수준에 그치면서 전체 시스템과 상품, 각 상품과 고객 처리 프로세스, 규정 정책 등에 대한 파악이 부실했습니다. 이로 인해 새로운 시스템의 적용 내용 파악이 불가능해졌고, 결국 화면 설계는 기존 화면을 그대로 옮겨 문서화하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복잡한 시스템에서는 ASIS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TOBE를 제대로 기획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특정 조건에서만 나타나는 화면이나 기능들은 표면적인 분석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렵죠. 이는 빙산의 일각만 보고 전체 빙산의 크기와 형태를 추측하는 것과 같습니다.
기획 프로세스의 본질
고급 기획자, 기획 PL, PM을 만나다 보면 간혹 기획의 분석/설계를 단순히 화면 설계로 이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화면 설계는 기획 작업 중 가장 마지막 단계에 해당합니다. 규모가 작고 단순한 시스템이라면 화면 설계와 함께 다른 기획 작업을 병행할 수도 있겠지만, 복잡한 시스템에서는 이런 접근이 불가능합니다.
복잡한 프로젝트에서 기획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은 단계로 진행됩니다:
- 개발될 앱/웹 파악: 비즈니스 요구사항을 분석하여 개발될 시스템의 전체적인 모습을 그립니다.
- BM → BA 또는 ASIS → TOBE 분석/설계: 비즈니스 모델(BM)을 비즈니스 아키텍처(BA)로 변환하거나, 기존 시스템(ASIS)을 분석하여 새 시스템(TOBE)을 설계합니다.
- 기능정의서, 화면정의서 작성: 앱과 웹에 적용될 기능과 화면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문서화합니다. 기능정의서는 백엔드 개발에, 화면정의서는 프론트엔드 개발에 중요한 가이드가 됩니다.
- 화면 설계서 작성: 화면정의서를 바탕으로 실제 화면을 넣어 작성한 문서로, 개발자와 디자이너에게 구체적인 가이드를 제공합니다.
- 스토리보드 작성: 화면들의 연결 관계와 사용자 흐름을 정의합니다. 이는 개발 시나리오라고도 불리며, 사용자가 어떻게 서비스를 경험하게 될지를 보여줍니다.
문서의 목적성
기획 문서는 단순히 '문서'가 아니라 개발에 실제로 사용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프로젝트에서는 화면정의서라는 이름의 문서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ASIS 캡처와 "TBD(미정/미결정)"로 가득한 수백 페이지의 형식적인 문서였습니다. 이런 문서는 개발자에게 아무런 가이드가 되지 못합니다.
화면정의서에 ASIS는 물론 TOBE 화면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다면, 이후 진행되는 화면 설계와 개발 작업에 혼란만 가중시킬 뿐입니다. 특히 화면들 간의 연결 관계가 정의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사용자 경험의 흐름을 파악하기 어렵고, 결국 개발자는 자신의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진정한 기획 문서는 개발자가 코드를 작성할 때, 디자이너가 UI를 디자인할 때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획의 독립적인 가치이자 존재 이유입니다.
앱/웹 기획의 핵심
앱/웹 기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발될 시스템에 대한 깊은 이해입니다. 이는 단순히 화면을 정의하는 것을 넘어, 시스템의 전체적인 구조와 데이터 흐름, 비즈니스 로직, 사용자 경험까지 포괄합니다.
UX는 단순히 화면 설계나 디자인 제안이 아닙니다. 진정한 UX는 사용자 경험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인지 심리학적 원리를 적용한 서비스 설계를 의미합니다. 화면만 예쁘게 그리는 것은 UX 디자인이 아니라 단순한 UI 디자인에 불과합니다.
기획자는 이런 복잡한 요소들을 모두 고려하면서, 개발 가능한 형태로 서비스를 설계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서비스 기획의 본질이자 가치입니다.
기획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프로젝트는 나중에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수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반면, 철저한 분석과 설계를 바탕으로 한 기획은 개발 과정을 원활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더 나은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기반이 됩니다.
Jay Kim 웹/앱 서비스기획 26년차
현대경제연구원 IT분야 전문 컨설턴트
프로필 http://bit.ly/3E1OGQB
프로젝트 문의: mailside@gmail.com (카카오톡, 지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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