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기획 이야기

서비스 기획, 화면 너머의 진짜 가치

BasicPlan 2025. 3. 12. 16:45

디지털 제품을 만들 때 ‘기획’이라는 말은 자주 오해를 낳습니다. 특히 국내에서는 ‘화면 기획’으로만 여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진짜 기획은 뭘까요? 앱이나 시스템을 개발하며 느낀 경험을 바탕으로, 그 본질과 가치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국내 기획의 딜레마

외국에선 ‘기획자’라는 직무를 따로 두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근데 우리나라에선 기획자가 흔하죠.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좀 씁쓸합니다.

 

국내 IT 현장에서는 기획이 주로 화면 설계로 좁혀집니다. 제가 프로젝트에 들어갈 때 보면, 이미 뭘 만들지, 언제까지 할지가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기획자는 주어진 틀 안에서 화면을 그리는 일을 맡게 됩니다. 한 번은 프로젝트 초반에 들어갔는데, “이 화면 좀 그려주세요”라는 요청부터 받았습니다. 그때 좀 당황했어요. 기획이 아니라 디자인 작업 같았거든요.

 

이런 분위기는 시각적인 걸 중시하는 문화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근데 화면에만 치중하다 보면 제품의 근본적인 가치를 놓치기 쉽다는 걸 느꼈습니다. Figma 같은 도구로 설계와 디자인을 동시에 할 수 있는데도, PowerPoint로 먼저 그리고 옮기는 식으로 하니까 시간이 더 걸리더군요. 결국 중요한 건, 그 전에 뭘 만들지 명확히 정하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기획이 정말 해야 할 일

기획의 본질은 화면이 아니라 제품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겁니다. 사업이 될 수 있는지, 돈은 어떻게 벌지, 시장에서 먹힐지를 생각하는 과정이죠. 한 번은 쇼핑 앱을 기획하면서 “사용자가 진짜 원하는 건 뭘까?”를 파고들었어요. 결과적으로 빠른 결제보다 검색 편리함이 더 크다는 걸 알았고, 그걸 중심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기획은 비즈니스 로직과 정책을 만드는 시작점이라는 걸요.

 

좋은 제품은 기술이 화려해서가 아니라 문제를 잘 풀어내서 빛납니다. 아무리 UI가 예뻐도, 사용자 불편을 해결하지 못하면 오래 못 가더군요. 해외에서는 이런 걸 사업가나 제품 책임자(PO), 제품 관리자(PM)가 주도합니다. 그들은 문제와 해결책을 문서로 정리해서 개발자와 디자이너에게 넘기죠. 화면 설계는 디자인 과정에 녹아들고, 따로 떼놓지 않습니다.

 

 

분석과 설계가 왜 중요한가

기획에서 분석과 설계는 사업 아이디어를 개발 관점으로 바꾸는 작업입니다. 뭘 만들지, 어떻게 할지, 언제까지 할지를 정리하는 거죠. 보통 개발 팀이나 외주 업체의 PM, PL이 모여서 하거나, 전문 분석가가 투입되기도 합니다.

 

한 프로젝트에서 분석 없이 바로 개발에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처음엔 빨리 가는 것 같았는데, 나중에 기능 오류가 터지고 사용자 불만이 쏟아졌어요. 결국 다시 손보느라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그때 느꼈습니다. 분석과 설계는 시간 낭비가 아니라 투자라는 걸요. 사업가는 문제를 잘 알지만, 개발 세부사항은 모를 수 있잖아요. 그 간극을 채우는 게 기획의 역할입니다.

 

 

설계를 건너뛰면 생기는 문제

분석과 설계 없이 화면 설계부터 시작하면, 제품의 본질을 고민할 시간이 부족합니다. 한 번은 고객사가 “이런 화면으로 해달라”고 바로 넘겨왔어요. 근데 왜 이걸 만드는지, 뭘 해결하려는 건지 명확하지 않더군요. 결국 기능만 쌓이다 보니 사용자 반응이 미지근했습니다.

 

진짜 혁신은 기존 방식을 디지털로 옮기는 게 아니라,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고 풀어내는 데서 나옵니다. “어떻게 디지털로 할까?”보다 “왜 이걸 풀어야 하고, 어떤 방식이 좋을까?”를 고민해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겉만 번지르르한 제품으로 끝날 수 있습니다.

 

 

기획의 진짜 가치

기획은 화면을 넘어, 제품이 풀어야 할 문제를 파고드는 겁니다. 한 서비스에서 사용자 인터뷰를 깊이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불편해하는 작은 디테일을 잡아내고 해결했더니, 별것 아닌 것 같던 기능이 큰 반향을 일으켰어요. 최고의 제품은 사용자가 자연스럽게 쓰면서도 문제를 해결받는다는 걸 모를 정도로 매끄럽습니다. 그걸 위해선 표면보다 사용자를 이해하는 데 더 힘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의 기획

기획은 단순히 화면을 그리는 게 아니라, 제품의 방향과 가치를 정하는 일입니다. 비즈니스 목표, 사용자 필요, 시장 상황을 엮어서 뭘 만들지, 왜 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과정이죠. 국내에서도 이런 인식이 조금씩 퍼지고 있습니다. 화면 기획자에서 벗어나, 비전과 전략을 짜는 제품 기획자나 관리자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이런 기획이 자리 잡으면, 예쁘기만 한 제품이 아니라 사용자 문제를 풀고 비즈니스 가치를 만드는 결과물이 나올 겁니다. 화면 너머를 고민하는 기획이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 그게 국내 IT가 더 단단해지는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